一劃, one stroke


Kostas Papakostas SOLO EXHIBITION

November. 4 - December. 10. 2022



일필휘지(一筆揮之)로 발견하는 우주, 무한의 올 오버 페인팅(all over painting)

 

조서은(전시기획/미술비평, 호반문화재단 디렉터)

 

영국 런던을 기반으로 유럽과 미국 등에서 활발한 작업을 펼치는 코스타스 파파코스타스(Kostas Papakostas, 1976~ )의 개인전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선보인다. 단색의 힘찬 붓질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의 화폭은 대부분 하나의 획으로 이루어져 있다. 순간적인 움직임과 확신에 찬 선은 그릴 당시의 신체의 움직임과 작가의 호흡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의 작업은 형식적인 기교나 색의 번잡함을 배제하고 선명한 브러쉬 자국과 같은 물감의 농담으로만 표현함으로써 형태와 정신성에 집중하는 것이다. 역동적인 화법으로 캔버스 위를 빠르게 움직이는 기운생동(氣韻生動)이 바로 코스타스만의 조형언어이다.

 

17세기 중국의 화가 석도는 ‘일획(一劃)’론을 이야기했다. 태곳적에는 화법(畵法)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는데, 한 획을 긋기 시작해 만 개의 획을 긋게 되고, 다시 수많은 형상을 표현하는 계기가 생겼다는 것이다. 석도의 논리에 따르면 일획은 모든 그림 작업의 시작임과 동시에 우주 만물을 담아내는 행위가 된다. 코스타스는 300년 전 석도의 사상과 공명(共鳴)한다. 서양의 모더니티 화면 안에 동양의 정신성을 담는다. 이는 그가 오랜 기간 불교와 동양 철학을 공부해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낯선 그리스계 영국 작가의 추상 드로잉에 공감하며 위로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불교에서의 선(禪)이란, 고요히 앉아서 좌선(참선)하며 마음을 평안하게 하여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선 사상은 코스타스 작업의 시작과 닮았다. 그는 정신적, 신체적 준비가 작업 과정의 일부라고 말한다. 작업실 밖에 현실과 담론적 사고나 판단을 두고, 마음을 한곳에 모아 고요히 사색하고 명상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꽤 오랜 시간의 침묵과 묵상의 과정을 거치고 아주 천천히 물감과 화폭을 준비한다. 이젤에 캔버스를 세워두고 그려나가는 서양식 화법이 아닌, 전통 서예 방식과 같이 캔버스나 종이, 알루미늄 패널을 바닥에 눕혀두고 마치 춤을 추듯 획을 긋는다. 미리 계획하지 않고 필획마다 충만한 정신성과 영감을 담아낸다. 그의 작업은 되돌아가거나 수정할 수 없는 직관적 움직임이여 자발적인 충동에 의한 본능의 결과다. 순간적인 망설임도 화폭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명상을 통해 정신과 신체가 조응된 결과가 작품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의식의 흐름대로 ‘일획’을 그어나가며 빚어낸 행위예술의 성과에 가깝다. 한마디로 ‘영적 즉흥연주’(spiritual improvisation)와도 같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즉흥연주는 역설적으로 수많은 레퍼투어에 대한 이해와 음악적 훈련을 바탕으로 경지에 오른 예술가들의 전유물이기도 하다. 유명한 재즈 즉흥연주가들이 클래식 작곡가 못지않은 실력을 가졌듯 말이다. 같은 맥락에서 석도는 “산천인물의 조화, 조수초목의 성정, 연못 등의 구도와 이치, 형태를 깊이 알지 못하면 일획의 넓은 의미를 터득할 수 없다”고 했다. 일획은 그저 느낌과 본능에 기대 작업하는 감성적 창작이나 말초적 예술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파파코스타스의 영적 즉흥연주-일획들-은 동서양 시각예술에 대한 폭넓은 연구와 고찰을 통해 빚어낸 산물인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시리즈와 같은 일필휘지(一筆揮之) 작업은 2020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는 국제 아트 레지던시에서 활동하던 중 우연히 마주한 오래된 산업용 인쇄용지 롤에 검은 페인트를 사용하여 밤을 새워 붓질해나갔다. 레지던시가 끝날 때쯤에는 1,000미터가 넘는 대형 작업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경험은 힘 있고 완성도 높은 지금의 필력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자유롭고 즉흥적인 움직임과 터치, 정직한 선과 면에는 그리는 순간의 움직임과 정신, 자신감과 에너지가 담겨있다.

 

선택의 폭을 줄이고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 주로 한 가지 색으로만 작업한다는 코스타스의 이번 전시에서 보여주는 작품 시리즈는 파란색이다. 파란색은 작가에게 의미가 있다. 바다로 둘러싸인 그리스에서 태어나고 유년시절을 보냈으며, 영국이라는 섬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에게는 바다를 닮은 파란색이 가장 익숙한 색일 것이다. 파란색의 농담으로 표현된 획은 흐름과 변화, 자유를 느끼게 한다. 작품마다 물감의 깊이, 채도와 명도의 차이로 다양성을 추구한다.

 

칸딘스키나 파울클레, 몬드리안이 외형의 베일을 벗고 나아가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노력했던 것처럼, 코스타스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과 정체성을 탐구한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알려진, 팬 층이 두터운 그는 오랜 기간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언어를 구축해왔다. 코스타스에게 낯선 땅인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은 여러모로 많은 의미를 지닌다. 우선 ‘채움과 비움’이라는 동양적 사유를 서구 작가가 어떤 방식으로 소화했는지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어쩌면 ‘일획’이야말로 가장 본능적이면서 우주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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