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NCEMEAT
Miguel Ángel Fúnez SOLO EXHIBITION
September. 23 - October. 22. 2022
하이브리드 시대의 회화: 미겔 앙헬 푸네즈의 상상 동물 도감
김보라(예술학/미술비평, 홍익대학교 회화과 초빙교수)
스페인 마드리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미겔 앙헬 푸네즈(Miguel Ángel Fúnez, 1988- )는 널리 알려진 대중문화의 동물 아이콘을 출발점으로 삼아 자신만의 독창적 이미지를 창조해낸다. 이번 전시를 통해 첫선을 보이는 회화 시리즈 ‘민스미트(mincemeat)’에는 개, 개구리, 사자, 딱따구리 등이 등장하는데 누구나 한번쯤 만화나 애니메이션 어딘가에서 본듯한 캐릭터, 이를테면 스누피, 핑크팬서, 가필드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첫눈에 느꼈던 친숙함은 이내 낯섦으로 전환된다. 특정 캐릭터를 암시할 뿐, 정작 온전한 형태로 보이는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 작가는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자리 잡은 만화 캐릭터를 활용하되 ‘다진 고기’를 뜻하는 영어 ‘민스미트’의 의미 그대로 잘게 자르고 섞는 과정을 거쳐 탄생한 긴장감 넘치는 이미지로 화면을 채우고 있다.
이러한 ‘민스미트’ 회화 시리즈는 익숙함과 생경함, 명료성과 모호성의 경계에 선 양가적 이미지를 제시한다. 작품 제목 역시 화면 속 캐릭터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으며 그저 ‘하얀 개’, ‘분홍 사자’, ‘노란 새’ 등으로 지칭하고 있다. 화면 형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의 캐릭터를 여러 부분으로 나눈 후 중첩하거나 이어 붙이는 경우와 한 캐릭터를 또 다른 캐릭터 혹은 모자, 케이크, 하트 이미지와 섞어서 조합한 경우다. ‘하얀 개’처럼 중심 캐릭터가 백색일 때에는 바탕이 빨강, 노랑, 파랑이지만 ‘분홍 사자’처럼 캐릭터 자체에 색상이 있을 때 바탕은 하양이며 전체적으로 화면이 꽉 찬 인상이 두드러진다. 파편화된 형태를 결합하여 재구성하고 있으나 눈에 띄는 이음새 없이 분명한 윤곽선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형상이 드러나는 것 같으면서도 숨겨지고 있어 작가 특유의 이미지 해체와 재조합 과정을 한눈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작품 하나하나가 일종의 위장(camouflage) 이미지로 작동하는 것이다.
미겔은 회화 이외에도 사진과 드로잉 작업으로 동물 이미지를 다룸으로써 바이오 테크놀로지 발전과 더불어 인간이 자연에 개입하면서 초래된 문제나 디지털 기술을 통해 쉽게 변형되고 복제되는 혼성적 이미지 문화에 접근해오고 있다. 작가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고대 문헌인 플리니우스의 『박물지(Naturalis Historia)』나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로부터 에두아르도 칵의 바이오아트에 이르기까지 미겔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예술사적 배경은 실로 다양하다. 무엇보다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독특한 환상 세계는 작가에게 중요한 영감의 원천이 된 것으로 보인다. 보스는 <세속적 쾌락의 정원(The Garden of Earthly Delights)>(1490-1500)에서 인간과 갖가지 동식물이 뒤섞인 놀라운 상상의 이미지를 구현한 화가로, 일찍이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칭송받은 바 있다. 이 삼면 제단화는 세계 최고의 회화 컬렉션을 자랑하는 미술관이자 미겔이 어린 시절부터 여러 차례 방문했을 프라도미술관의 대표 소장품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미겔의 예술은 중세의 동물우화집, 진기한 동식물 표본을 수집해놓은 공간이었던 16-17세기 호기심의 방(Wunderkammer)이나 상상력이 창조한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모은 보르헤스의 책 『상상 동물 이야기(El libro de los seres imaginarios)』와도 연관지어 볼 수 있다.
이처럼 미겔은 풍부한 인문학적 소양을 토대로 한 시대적 통찰과 탁월한 표현력을 겸비한 작가로서 예술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작품은 생명 복제와 재조합, 이미지 조작과 변형이라는 동시대적 현상에 대해 성찰하게 하며 인공지능 시대에 날로 중요해지고 있는 인간 상상력의 가치를 되새기게 하는 것이다. 어느 인터뷰에서 작가는 “매일 내 자신을 넘어서고자 끊임없이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나를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했다”라고 말한다. ‘민스미트’ 회화 시리즈로 자기만의 상상 동물 도감을 구성하는 미겔의 작업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반영하는 동시에 또 다른 세계를 창안하는 예술의 역할을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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